셋이서 쓰는 작은 공부방은 1층에 있다. 1층이라곤 해도 바로 앞에 지면보다 높게 돋워진 길이 있고 단 하나뿐인 창문 바로 앞에는 큰 나무들이 서있는데다 언제나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다. 한낮에도 형광등을 끄면 꽤 어두침침하다.
내 책상은 창문을 등지고 미색으로 칠해진 벽 뿐인 귀퉁이를 향해 있다. 그런 고로 우리 공부방의 햇빛 환경은 반지하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다.
나는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장도 거의 텅텅 비어 있다. 공부하기에는 꽤 쾌적한 환경이지만 역시 미색 벽만 마주하고 있으니 뻘쭘한 기분이다.
..... 라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실은 그냥 뭔가 생물을 키워보고싶다는 욕구가 발동해서 식물을 들여놓았다는 쪽이 훨씬 정직한 것 같다.
2월 말에는 꽃대가 올라오는 물재배 히야신스를 한 뿌리 가져다 놓았다. 꽃대가 며칠만에 쑥쑥 올라오고 진분홍색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나는 것은 좋았지만, 꽃이 지고 나자 햇볕이 너무 부족해서 웃자라기 시작했다. 결국 기숙사 방 창가로 보내야했다.
우리 공부방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열심히 알아보았다.
우리 방의 환경은, 햇볕이 절대부족하고 덥고 건조하며 바람이 없다. 이런 데서 잘 살 수 있는 식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내에서 키우게끔 개발되고 판매되는 많은 관엽식물들은 대부분 출신지가 열대, 아열대 지방이다. 열대에서 큰 나무들이 즐비한 숲 바닥의 음지에서 자라던 식물들이 개량된 것이 많다. 빛이 적고 덥다는 점에서는 잘 맞는데 습도가 안 맞다. 또 실내에서 많이 키우는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은 덥고 건조한 데서는 잘 자라지만 볕을 많이 봐야 한다.
결국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다가, 습도는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면 점차 높아질테고 그 전에는 분무기를 이용해서 버텨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무나무, 행운목, 포테리스를 각각 화분 포함으로 5천원씩에 구매했다. 포테리스는 고사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배송중 습도 보존을 위해 흙 위에 덮어 둔 것 같은 가짜 이끼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고고싱 시키고 따로 식물원에 가서 완효성 고체비료 한 통을 3천원에 사와서 두세알씩 얹어 주었다.
(사진 찍는 실력은 형편없다. 구도가 뭔지도 모른다. )
먼저 고무나무
행운목
포테리스 이쑤시게는 흙 안쪽의 수분 상황을 알아보려고 꽂아 둔 것인데.... 이래 놔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빛이 너무 부족하면 아무리 음지식물이래도 잘 못 자랄까봐 보조 조명을 달아주었다. 사진 찍으려고 불을 잠시 껐다. 저 자바라 스탠드도 20W 형광등 포함으로 시장 철물점에서 1만원에 샀다. 식물재배용으로 출시되는 형광등이 따로 있지만, 가격도 비싸고 봉 형태로 된 것 뿐이어서 설치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 그냥 보통의 형광등으로 했다. 식물재배용 등은 이것보다 훨씬 밝기도 하고 색깔도 연보라색이 난다.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 짧은 파장의 빛이 많이 나와서 생장을 촉진'한다고 광고하는데, 이 부분은 좀 이상하다. 가장 주요한 광합성 색소는 엽록소, 엽록소는 초록색이고 680, 700nm 정도의 적색광을 흡수한다고 배웠다. 예전에 있었던 식물랩에서도 지하 온실에 켜 두었던 형광등이 연보라색이 아니라 백색이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백색광이면 여러 파장의 빛이 다 나올테니 안 켠 것 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으로 그냥 샀다.
예전에는 물주기를 뿌리 부근의 흙에 종이컵이나 생수병 등을 이용해 부어서 화분 아래 구멍으로 물이 새어 나올 때까지 주는 방법을 썼다. 그런데 흙이 입자가 고우면 그런 방식으로 물을 주면 비 온 뒤 진흙땅이 벽돌처럼 딱딱하게 굳듯이 흙이 굳어지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흙이 굳으면 물을 줄 때 흙 표면으로만 물이 흘러서 바닥 구멍으로는 물이 나오지만 흙 안에 든 뿌리에는 물이 잘 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 쉽다. 위에서 물주는 방법으로 오래 키운 화분에서는 물을 줄때 삐이이~하는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었고, 분갈이 할 때 뒤집어보니 정말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이번에는 저면관수를 하기로 했다. 저면관수는 화분 채로 물에 반쯤 잠기게 하여 잠시 방치하는 방법이다. 겨울에는 뿌리가 얼어 썩을 수도 있으므로 이 방법이 추천되지 않지만, 실내는 새벽까지 덥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저면 관수용으로 산 플라스틱 세숫대야 포테리스를 저면관수하는 모습 행운목을 저면관수 하는 모습 처음 배송받을 때 화분 바닥에 흙이 지저분하게 묻어있었는데, 대야 바닥에 보이는 검은 찌꺼기들은 거기서 나온 것이다. 화분 안에 든 흙이 저렇게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저면관수 시간은 15분 정도를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더 길게도, 짧게도 했고 주기도 내맘대로다. 물주기에는 정형화된 방법이란 게 없으므로. 굳이 있다면 고무나무보다는 포테리스와 행운목을 더 습하게 관리한다.
저면관수라는 단어가 왠지 마음에 안 들어서 '담그기'라고 부르고 있다. 해보니 화분 받침에 올려놓았을 때 물이 흘러나와서 얼룩을 남기는 일도 없고 깔끔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포테리스와 행운목은 때때로 분무를 해준다. 분무 하고 나서 불과 십여분이면 언제 분무했냐는듯 말라버려서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다.
분무기와 고체비료 물을 위에서 주지 않으니 고체 비료가 매우 느리게 녹을 것 같아서 물에 희석해서 쓰는 액체 비료를 2천원 주고 한 통 준비했다. 아직 가져오지 않았는데 다음에 담글 때 물에 섞어서 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