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제련하라 2부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박사과정 학생으로 블랙스미스 박사를 만난 것이 그 때였다.
나는 블랙스미스 박사의 이름을 따서 B. blacksmith라고 명명된 그 신비로운 미생물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작은 온도변화나 압력 변화에도 무척 민감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우주에서 살아남았는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사료로는 같은 행성에서 유래한 다른 미생물이 제공되었다.
까다로운 배양 조건을 맞춰주는 인큐베이터를 개발한 뒤, 나는 B. blacksmith가 산화철을 순도 높은 금속 철로 제련하는 메커니즘을 알아 내기 위해 이 미생물을 갈아서 원형질을 뽑아냈다.
B. blacksmith를 갈면 붉은 액상의 원형질이 나왔다.
필터로 걸러서 찌꺼기를 제거한 후, 이 체액의 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헴 철'이라고 명명하게 된 새로운 형태로 철 원자가 다량 검출되었다.
이로써 이 미생물이 공급받은 산화철을 흡수하여 헴 철 형태로 바꾼 다음, 이것을 고순도 금속 철로 제련하는 생화학적 과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나를 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이번에도 유례없이 큰 규모의 연구비를 쉽게 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문제가 생기다니....
블랙스미스 박사로부터 제공받은 미생물 샘플에서는 분명히 금속철 껍데기가 관찰되며 공급받은 산화철을 지속적으로 금속 철로 제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본래의 샘플로부터 일부를 따서 새 배양배지에 옮겨주면 생존율이나 번식율이 훨씬 좋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철을 제련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헴철은 분명히 다량 검출되는데, 어째서 금속 철을 제련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산업화의 꿈은 물건너간다.
나는 갑갑한 마음에 블랙스미스 박사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글을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별 근거는 없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배양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산화철을 제공하는 대신 B. blacksmith를 갈아서 추출한 헴철이 다량 함유된 체액을 배양배지에 제공하는 것이다.
산화철이 헴철을 거쳐 금속철로 제련되므로, 헴철을 제공한다면 금속철을 제련하기가 한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원본 샘플에서 미생물 일부를 따서 빨간 새 배양배지에 옮겨주고 조심스레 뚜껑을 닫고 인큐베이터에 넣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벌써 늦은 밤이었다.
코트를 걸치고 연구실을 나섰다.
일단 오늘 밤은 될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4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