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보도블럭 틈새에 보라색 꽃이 소복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 꽃이 제비꽃인지, 오랑캐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꽃인지 사실은 잘 모른다.
모래 알갱이가 틈새에 박혀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냥 돌틈'이다.
그런 데서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더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지나치게 풍성한 꽃이었다.
잎은 크지도 않은 걸로 네 장 밖에 되지 않는데 꽃은 다섯송이가 피고 두 송이가 봉오리로 맺혀있다.
일반적으로 식물 입장에서 꽃은 잎보다 훨씬 '비싸다'.
곤충을 유도하기 위한 색깔과 무늬를 입히고 꿀도 마련해야 하고, 암술수술도 만들어야 하는데 잎과는 달리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기능은 전무하다.
씨가 맺히면 또 거기에 엄청난 양분을 공급해줘야 한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을 더 많이 내서 양분을 모으겠지만 잎보다 훨씬 많은 꽃을 우선으로 피운다는 것은 큰 모험임에 틀림없다.
제비꽃 씨앗을 본 적은 없지만, 그리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씨앗에 저장되어 있던 양분도 변변찮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돌 틈사이에 뿌리가 얼마나 풍성하게 내렸을지도 의문이고, 저 자리는 한낮 한때가 아니면 거의 언제나 그늘이다.
누군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 아래 형편없는 잎사귀들을 보고 "카드빚으로 예쁘게 치장하고 다니는 철없는 아가씨같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식물 세계에는 카드빚이란 게 없다.
어디서 용케 에너지를 만들어서 저렇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카드빚 아가씨는 그 몰락이 예견되어 있지만, 저 꽃은 이런 생존전략으로 여러 세대를 이어가며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