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2천년 전에 지구를 연구하기 위해 안드로메다에서 온 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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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을 제련하라 2부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박사과정 학생으로 블랙스미스 박사를 만난 것이 그 때였다.
나는 블랙스미스 박사의 이름을 따서 B. blacksmith라고 명명된 그 신비로운 미생물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작은 온도변화나 압력 변화에도 무척 민감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우주에서 살아남았는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사료로는 같은 행성에서 유래한 다른 미생물이 제공되었다.
까다로운 배양 조건을 맞춰주는 인큐베이터를 개발한 뒤, 나는 B. blacksmith가 산화철을 순도 높은 금속 철로 제련하는 메커니즘을 알아 내기 위해 이 미생물을 갈아서 원형질을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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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lacksmith를 갈면 붉은 액상의 원형질이 나왔다.
필터로 걸러서 찌꺼기를 제거한 후, 이 체액의 성분을 분석해 본 결과 '헴 철'이라고 명명하게 된 새로운 형태로 철 원자가 다량 검출되었다.

이로써 이 미생물이 공급받은 산화철을 흡수하여 헴 철 형태로 바꾼 다음, 이것을 고순도 금속 철로 제련하는 생화학적 과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나를 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이번에도 유례없이 큰 규모의 연구비를 쉽게 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문제가 생기다니....

블랙스미스 박사로부터 제공받은 미생물 샘플에서는 분명히 금속철 껍데기가 관찰되며 공급받은 산화철을 지속적으로 금속 철로 제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본래의 샘플로부터 일부를 따서 새 배양배지에 옮겨주면 생존율이나 번식율이 훨씬 좋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철을 제련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헴철은 분명히 다량 검출되는데, 어째서 금속 철을 제련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산업화의 꿈은 물건너간다.

나는 갑갑한 마음에 블랙스미스 박사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글을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별 근거는 없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배양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산화철을 제공하는 대신 B. blacksmith를 갈아서 추출한 헴철이 다량 함유된 체액을 배양배지에 제공하는 것이다.
산화철이 헴철을 거쳐 금속철로 제련되므로, 헴철을 제공한다면 금속철을 제련하기가 한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원본 샘플에서 미생물 일부를 따서 빨간 새 배양배지에 옮겨주고 조심스레 뚜껑을 닫고 인큐베이터에 넣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벌써 늦은 밤이었다.
코트를 걸치고 연구실을 나섰다.
일단 오늘 밤은 될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4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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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2 08:00 2008/04/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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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lacksmith는 새로운 기능성 미생물 발견 업적을 많이 쌓은 현장 생물학자 블랙스미스 박사가 채집한 미생물이다.

폴리머로 이룩해 온 우리 문명 세계에 있어서 신소재인 철 금속의 발견은 새로운 문명 시대를 열어 주는 장밋빛 약속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 환경에서는 철 원자 자체가 매우 희귀했다.

전 우주를 통틀어서도 철 원자는 귀하다.
항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 몇번이고 반복되어 흔한 수소 원자가 철 원자가 되려면 희박한 확률의 행운과 긴 시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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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비되고 있는 금속철은 대부분 핵융합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만 단가가 너무 비싸서 대량생산에는 부적합한 방식인 것으로 드러났다.


위대한 물리학자 웨페트 박사는 철 금속이 고체와 플라즈마 상태 외에도 액체라는 중간적인 상태를 가질 수도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고, 그의 제자인 타쉬 박사가 극히 정밀한 실험기기를 통해 철의 액체 상태를 실험실에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순수 금속철보다는 값싼 산화철 분말을 비슷한 조건으로 가열하면 때에 따라서 소량의 액체 금속철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밝혀져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는데, 웨페트와 타쉬 박사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빠른 '최고 과학자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액체 상태가 나타나는 조건의 범위가 너무 좁아서 실험의 재현성이 형편없다는 것이 드러나 두 박사는 윤리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로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순도 높은 금속철을 제련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내가 시도하고 있는 방식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새롭고 놀라운 방법인 미생물 제련법이다.

블랙스미스 박사는 우연히 한 나선은하의 차가운 구석에서 금속철 집적도가 매우 높은 작은 행성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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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이 행성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금속철 부분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어째서 이렇게 높은 집적도의 달성이 가능했는지가 궁금해져 행성의 표면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았다.

놀랍게도 행성 표면에는 고순도 금속철을 껍데기(Shell)삼아 두르고 다니는 미생물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미생물들이 알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스스로 금속 철을 생산하여 철 껍데기를 만드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3부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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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1 19:29 2008/04/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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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청중들을 돌아보려는 순간, 프로젝터의 푸르스름한 밝은 빛이 갑자기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한 탓에 말이 빨라졌다.

"우리의 지속적인 문명 발전을 위해서는, 급증하는 금속 철 수요를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금속 철 문제에 경제적이며 실현가능하며,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또 눈부심을 겪고싶지 않아서 잽싸게 프로젝터 빛의 범위로부터 벗어나 옆으로 물러섰다.

청중들은 이미 내 발표 내용의 골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은 없었다.

"축하하네. "
"열심히 하게."
"자네 연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네."

나이가 지긋한 청중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한 사람씩 격려의 말을 남기고 세미나실을 떠났다.
마지막 청중의 코트 자락이 복도로 사라지자 나는 겨우 경직된 미소를 거두고 차가운 벽에 이마를 붙였다.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승인 받을 것을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워낙 큰 연구비가 걸린, 높은 사람들이 들으러 오는 발표였기 때문에 많이 긴장했었다.
이제 제안서를 발표하고 승인까지 받았으니 이 연구의 성패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오늘 아침까지도 미생물 제련된 금속 철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제안서에 preliminary result로 금속 철의 검출 사진을 넣어서 심사위원들에게 더욱 확고한 인상을 주고싶은 욕심에 아침까지 난리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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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촉박했어. 좀더 여유를 두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고 기다리면 철이 나오겠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B. blacksmith라고 이름붙인 그 미생물이 시험관 환경에서 철을 제련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가방을 챙겨 세미나실을 나섰다.



연구실로 돌아와 인큐베이터를 열고 혹시나 하는 심정에 조금씩 배지를 떼어내 시험관으로 옮기고 원심분리 한 다음 상층액을 따라 버리고 새 버퍼로 희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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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한 기대감과 함께 전자석에 전원을 넣고, 1시간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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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도 금속 철은 없다.

"헴 철 밴드는 이렇게 뚜렷한데!"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인큐베이터를 쏘아보았지만, 쓴웃음만 나와서 그만두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2부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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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1 19:09 2008/04/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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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부에서 이어집니다-


어쨌든 지하로 들어간 일행은 사고와 필요성에 의해 하나둘씩 돌아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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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버슨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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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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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즈씨 안녕.
기계 설계에 있어서 납기가 너무 촉박하면 엔지니어의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교훈을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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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스키씨도 안녕.
이 아저씨는 죽기전에 해탈도 하시고 웃다가 죽는다.
행복해서 웃는 얼굴은 전혀 아니지?
처음에는 밥맛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매력있어지는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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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된 위치에 핵폭발을 일으키고 외핵을 돌리는데 성공한다.
지구를 구했다.

둘만 남았는데 땅속에서 동력도 없고 그냥 죽을날만 기다려야 하는 조쉬와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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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이고 전력이 전혀 없으니 완전한 암흑속에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이 부분 러닝타임동안 깜깜한 스크린에 대사만 내보내서야 관객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인지 어디선가 빛이 들어오고 있다.
남녀가 나란히 붙어 누운 듯한 자세 때문에 혹자는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고 우리 그거나 할까"라는 상황을 기대하기도 했다는데....
그 흔한 '손잡기', '뽀뽀'는 커녕 'I love you' 스러운 대사도 한마디 안 나오더라.

미쿡 영화는 주인공 남녀를 영화 끝까지 살려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둘은 우여곡절끝에 땅속에서 기어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게 말이 되냐는 질문은 안 받는다.


지구과학, 종말론, 과학자 행동학 중 어느 하나에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고, 볼거리도 많이 제공된다.
2시간 쯤으로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초중반에 계속되는 위기와 재난으로 눈을 붙잡아 놓는 힘이 있다.

다만 일반관객을 위해서는 왜 이런 재난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족한데, 일일이 설명하고 있다가는 긴장감은 떨어지고 지구과학 교육비디오가 되기 십상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여주면 욕만 실컷 먹을 사람도 있으니,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권유하지 말도록 하자.

- 미국식 영웅주의를 극히 혐오하는 자
- 로맨스가 없으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
- 설정을 이해할 수 없는 자 (예: 10살짜리 조카)
- 나쁜놈 응징하기가 아닌 플롯을 이해할 수 없는 자
- 섹시미녀가 안 나오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
(미녀가 나옵니다만, 몸매 감상할 기회는 전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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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16:48 2008/03/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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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집니다. -

땅속에 들어갈 훈련과 준비를 하는 도중에도 점점 재난이 다가온다.
국지적인 방전이 일어나면서 번개폭풍이 발생한다는데, 사실 이 부분은 과학적으로 어디까지 타당하고 어디부터 상상력인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 당할 도시는 로마다.
콜로세움에 벼락이 엄청나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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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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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익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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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광

아마도 돌틈의 균열에 있는 물이나 공기가 고전압에 의해 급팽창하면서 저런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 같다.

신전도 캐박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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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의 신 제우스(유피테르)를 주신으로 섬겼던 로마의 문화유적이 번개에 의해 파괴된다는 상징성이 있어서 로마를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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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불타고 폐허로 변했다.

주인공들은 탐사선 타고 땅속으로 고고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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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파고 들어가는 버질호.

지상에는 재난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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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에너지 입자로 가득한 태양풍으로부터 지상을 보호해주던 전자기장 막이 벗겨진 곳이 생겨났다.
샌프란시스코 상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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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엄청난 서광이 내려온다.
이 빛은 바닷물을 끓이고, 교량에 닿자 교량을 녹여 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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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도 폐허가 된다.


영화에서는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런 부분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세계 곳곳의 종말론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심판,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나 불덩어리...
이런 것들이 종말론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모티프이다.
어 느날 갑자기 지자기가 일시에 사라진다면, 지구의 낮이었던 부분은 그대로 태양풍에 구워져버릴테고, 밤이었던 부분에서는 저위도에서까지 찬란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가 극지에서만 주로 보이는 것은 오로라의 발생원인인 하전입자가 밴 앨런대를 따라 흘러 나가버리는데 양 극에서만은 지구로 떨어질 찬스가 있기 때문이다.
하전입자가 제한없이 떨어져 내릴테니, 저위도에서도 극지에서 본 것보다 훨씬 찬란하고 화려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위도에서 처음 그런 오로라를 보는 사람이라면, 신이나 천사의 강림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태양 빛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고대인들이 기록한 종말은 어쩌면 일시적 지자기 약화로 인해 일어났던 참사를 묘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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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16:44 2008/03/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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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은 기회에 영화 코어(The Core)를 보게 되었다.

2003년 4월 18일에 국내 개봉한 SF 액션 스릴러다. (라고 네이버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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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마 포스터부터 봤더라면 이 영화 안 봤을지도 모른다.
개봉 시점도 아마게돈과 투마로우 중간이었다고 하는데, 아마게돈을 재미없게 봤으니 '이번에는 지하판 아마게돈이냐..' 하면서 백안시부터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코어는 포스터와는 달리(?)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재미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1. 문제상황 설정이 재미있다.
외핵 유동이 멈춰 지자기가 엉망이 된다.
지자기가 약해질 때 지상에 생기는 일들이 영화로 구현되는 것이 볼만하다.

2. 디테일
내가 대학원생이라 그런지,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과학자 행동학'이 두드러져 보인다.
작가나 감독이나 연출 중에 이공학계열 전공자가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일반관객이라면 예쁘고 잘나고 냉정한 '얼음공주' 벡에 가장 주목하겠지만,
나는 짐스키와 브래즈가 가장 볼만했다.
특히 짐스키라는 인물이 주목할만하다.


이 영화를 볼 때 생각하면 재미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1. 스토리
상황 설정은 좋다.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스토리는 기대하지 마라.
지구를 구하기 위해 여섯 명의 영웅이 땅속으로 떠난다.
하나씩 희생하고 죽고, 결국 주인공하고 주인공 여자친구(가 될 듯한 분위기도 슬쩍 흐르는)하고, 둘만 지구를 구하고 극적으로 살아돌아온다.
벌써 보기가 싫어진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을 보려면 진부한 스토리 쯤은 가볍게 무시해주자.

2. 과학적으로, 외핵까지 사람이 들어간다는게 가능한거야?
말할 것도 없이 현재는, 그리고 근미래에도 불가능하다.
영화설정은 이렇다.
지자기의 근원인 외핵의 회전 유동이 무슨 이유에선지 멈춰버린다.
완전소중한 지자기를 되살리기 위해 일단의 과학자와 군인들이 땅속 탐사선을 만들어 외핵까지 들어가서 핵폭탄을 터뜨려 유동을 되살리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지구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부분은 지자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현상들이다.
이 부분은 재미도 있고 과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지자기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다 죽었네요. 끝" 이렇게 영화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나리오를 이어가려면 주인공들이 땅속에 들어가야만 한다.
여기서부터는 과학기술적 억지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사실 SF 영화를 보면서는 이게 또 중요한 재미요소이기도 하다.
레이저와 초음파로 순식간에 앞길을 뚫는다든지 지구 내부의 고온고압에도 견디는 물질이라든지 하는 것 부터는 뻥이다.
이것도 잘 들여다보면 그럴싸하게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제 영화 속으로 고고싱 해보자.

사람들이 갑자기 픽픽 쓰러져 죽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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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기가 일시적, 국지적으로 난리부르스를 추자, 민감한 뇌(?)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빈혈걸린 양가집 규수처럼 쓰러져 죽는다.
사실 지자기는 그리 강하지 않다고 하고, 잘은 모르지만 MRI장비라든가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하는 기기 근처에서도 사람이 이렇게 쓰러져 죽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부분은 그냥 가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캡쳐된 아저씨는 영화 맨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인데 등장 몇초만에 죽는 신세가 되었다.
일단 이런식으로 눈을 붙잡아 놓는데 성공한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은 엄청난 비둘기떼로 유명하다.
지자기가 난리나자, 새들이 방향을 잃고 미쳐 날뛰며 인간이고 건물이고 할것 없이 오만 데 다 들이받는 바람에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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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교통사고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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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유리벽에 마구 부딪히기도 하는데....
잉? 넌 누구냐? 비둘기들 사이에서 왠 생선이 캡쳐되었다.
왜 생선이 캡쳐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캡쳐해보기 전에는 전부 비둘기가 부딪히는걸로 보인다.

새들이 미쳐 날뛰는 것은 아마도 철새들이 뇌에 나침반이 있어 지자기를 인식하여 방향을 찾는다는 가설에 근거하는 설정인 것 같다.
철새가 아닌 비둘기가 단거리 비행에서 뇌 나침반을 이용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새의 공간감각 인식 자체가 지자기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면 이럴 수도 있다.

네비게이션도 개판난다.
덕분에 바다에 착륙해야 하는 우주왕복선의 좌표 유도가 잘못되어, 로스앤젤레스 시가지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게 되는데....
원더우먼 여주인공이 기지와 능력을 발휘하여 로스앤젤레스 강에 착륙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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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앞에서 겨우 멈췄다.
벙쪄서 우주선 앞코를 쳐다보고 있는 뒷모습의 아저씨는 용접한다고 시끄러워서 등뒤에 우주왕복선이 착륙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우주왕복선 추락 대량 살상사태"를 막은 얼음아가씨 벡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더욱 죽기좋은 땅속으로의 항해에 조종사로 발탁된다.

지자기가 약해진 하늘에서는 북극권, 남극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밤에 오로라를 구경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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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조쉬. 무슨 계시라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다.
사실은 그냥 "헐~" 이러고 있는 멍한 모습이다.

강의를 재미있게 해볼려고 애는 쓰지만 잘 안되는 지구과학과 교수 조쉬는 외핵의 유동이 멈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잘나가는 유명 과학자 짐스키에게 연락한다.
짐스키와 조쉬는 장군들 앞에서 문제가 뭔지 발표한다.
지자기가 없어지면 결국 태양풍으로부터 지표면이 보호받을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타죽어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 요지다.
말로 다 설명해놓고도 '멍청한 고위 군인 나으리'들을 위해 불쑈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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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이렇게 됩니다."
이분이 짐스키 아저씨.

외핵 유동의 뉴메리컬 모델링을 주요 연구 분야로 하고 있는 짐스키씨는 외핵에 엄청난 폭발 충격을 주면 유동을 되살릴수도 있음을 알아낸다.
그러려면 외핵에 들어가는 장비가 필요하다.

짐스키의 오랜 웬수인 브래즈가 이런 '미친' 프로젝트를 사막에서 하고 있는데,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잘난척쟁이에 머리를 뒤로 빗어넘기고 땅속에 들어갈때조차 명품가방을 들고가는 '밥맛' 짐스키와는 대조적으로, 정치력이 부족한 '미친 천재 공학자' 브래즈는 꾀죄죄한 용모에 정신없는 화법을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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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만에 완성하려면 얼마면 되냐는 고위 군인의 질문에 "15억 달러!"라고 말하며 자조섞인 폭소를 터뜨리는 브래즈씨.
연구비 따낼려고 발표할때마다 받은 잇따른 미친놈 취급으로 살짝 맛이 가시고 돈에 쪼들려온 인생의 굴곡(?)이 드러나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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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로 줄까?" "카드가 낫지 않을까요?"
이 와중에도 카드 마일리지를 챙기는 알뜰한 조쉬씨.
뒤에서 짐스키가 "천박한 것들..."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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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는거야?" 벙쪄버린 브래즈.

이렇게 해서 지중 탐사선이 만들어진다.
외핵에 들어가는 탐사선을 만들 기술은 이미 다 확보되어 있으나 돈이 너무 들어서 못 만들고 있었을 뿐이라는 설정인데, 너무 신경쓰지 말기로 하자.
폭발력을 제공할 핵탄두는 국제협력을 통해 구해왔다는데 이 부분도 그냥 대충 넘기고 싶은 분위기이므로 깊이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 2부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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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16:36 2008/03/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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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꼬꼬마을' 카페에 가입해있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동영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김병오님의 동영상 고양이는 병아리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난리가 나는 것이 본능이고, 병아리들은 난리치면서 도망다니는 것이 본능일텐데 어찌 저렇게 사이가 좋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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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9 17:59 2008/03/2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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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 점점이 흩뿌려진 크고 작은 섬들.
예나 지금이나 열대지방의 바다와 누구도 다녀간 적 없는 풍요로운 섬 이야기는 대놓고 로망을 자극한다.

나는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읽고 또읽고 다른 역자의 책을 부러 찾아서 또 읽고, 이면지로 만든 연습장에 나만의 무인도 표류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소설이라기보단 환상을 글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환상을 그려보는 활동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무인도 이야기는 로빈슨 크루소보다 훨씬 '날로 먹는' 무인도였다.
쾌적한 기후, 철철 넘치는 민물, 그대로 먹어도 끝내주게 맛있는 과일이 제철도 없이 지천으로 열리고 쉽게 잡히는 새가 활보하고 위험한 동물이란 하나도 없고, 마침 딱 살기 좋은 동굴이 있어 푹신한 이끼를 깔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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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기사에 따르면 태평양의 거의 모든 외딴 섬에까지도,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라면 어김없이 사람이 살고 있거나 있었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출발한 뱃사람들이 수백년에 걸쳐 이스터섬은 물론 남아메리카까지 진출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 '라파 누이'라고도 불린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신비로운 섬이다. 문자가 기록된 목판이 남아있지만 아무도 해석할 수 없다. 이 문자를 '롱고롱고'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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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는 고대인들이 많게는 몇백 km까지도 망망대해로 분리된 작은 섬들을 탐험하는 것이 현대의 달 탐사에 비견될만한 대모험이라고 말한다.
이 모험을 한 뱃사람들을 우리는 라피타인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1200년경, 솔로몬제도에서 가장 가까운 산타크루즈 섬까지는 직선거리 370km의 망망대해로 중간에 기착할만한 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카누밖에 없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라피타인들은 산타크루즈섬과 그 너머 바누아투로 진출했다.
말이 370km지, 바람과 해류에 따라 경로가 흔들리다보면 그 두배의 거리는 가야 했을 것이고, 이것마저 목적지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정확히 알 때의 이야기다.
망망대해의 한 점에 불과한 미지의 섬이 어디있는줄 알고 계속 항해를 하겠는가?
운이 없으면 몇천 킬로미터를 항해해도 육지에 닿지 못할 수도 있다.
100년 후에는 800km 떨어진 피지까지 나아갔고, 태평양을 완전히 횡단해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은 기원후 1000년경이라고 한다.
그 와중에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호주까지도 진출했고 어쩌면 북아메리카로도 갔는지 모른다.
이렇게 넓은 범위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비교언어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고 항해술이나 종교의식 등도 단일문화권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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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달에 발자국을 찍으러 다녀왔다.
언젠가 달에 인간이 살게 될 지도 모르지만, 아폴로 계획은 달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 목적이었지 달에 살기 위해 간 것이 아니다.
주거를 목적으로 달에 가려고 한다면, 아폴로 계획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거대하고 복잡한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라피타인들은 가족과 곡식, 생활도구, 가축까지 데리고 떠나서 영구정착했다.

더욱 이상하고 무서운 대목은 지금까지 이런 원양 항해를 할 수 있는 기술의 흔적이나 배 등의 항해 도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태평양 주민들의 배와 항해술은 근해 어업에는 적절하지만 먼 바다에 나갈만한 것은 못 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초고대문명설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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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살아남은 라피타인들은 내가 연습장에 끄적거렸던 것 같은 환상의 낙원 섬에 도달하기도 했다.

호주국립대 고고학자인 스튜어트 베드포드의 말을 빌면 이랬다고 한다.

"당시 이곳의 모습은 정말 굉장했을 겁니다. ..... 산호초들은 이런 고둥(지름 30cm 정도의 밤바퀴고둥)들로 뒤덮여 있었고, 이런 것 하나면 한 끼 식사로 충분했죠.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넘쳐났고, 우림에는 날지 못하는 새들이 있었죠. 게다가 녀석들은 인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었어요. 라피타인들은 운이 너무 좋아서 낙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과연 라피타인들은 누구였고, 왜 항해를 하게 됐으며, 어떻게 그런 항해가 가능했을까?
그리고 어째서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버렸을까?

이 post의 모든 사진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nationalgeograph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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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15:00 2008/03/25 15:00
Posted
Filed under 상상력 자극/다큐
거의 매달 서점에서 내셔널 지오그픽 한글판을 사서 보고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좀 늦긴 해도 공짜로 볼 수 있지만, 사진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갖고싶다'는 마음이 발동되었다.
매달 1만7천원이면 한 달 생활비 30만원인 원생으로는 적은 돈은 아닌데....

다달이 책장에 빼곡해져가는 과월호를 보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두고 싶어졌다.
저작권 문제가 살짝 걱정이었는데 이런저런 저작권 관련 문헌들을 검토해 보니, 리뷰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생산한 컨텐츠가 아니라 리뷰어의 지적 생산물이기 때문에 기사 내용을 복사해 넣는다든지 사진을 스캔해서 올린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리뷰는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도 내셔널지오그래픽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고 있는 사진은 출처를 밝히고 쓴다면 괜찮을 것 같다.


아래는 NG 홈페이지에서 구한 3월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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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머릿속 탐구
언어판을 써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보노보 칸지, 제인 구달이 발견한 침팬지들의 도구 사용 등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호에는 새로운 내용들이 더 많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시아 코끼리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볼 수 있고 물고기인 아프리카 시클리드는 다른 개체들의 싸움을 보고 자기 서열을 가늠한다.
'금붕어 대가리'라는 말도 있는데, 아무래도 물고기의 기억력이 몇 초에 불과하다는 얘기는 최소한 모든 물고기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고기도 '줄서기'를 할 줄 안다는 이야기로 들려 한참을 웃었다.

싸움구경, 줄서기를 한다는 '물고기 대가리' 아프리카 시클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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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회색앵무의 머릿속은 더욱 신기하다.

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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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나 구관조가 인간의 말을 따라하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흉내내는 것 뿐이고, 그것도 잘 흉내내면 먹이를 주는 등의 상벌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개된 알렉스라는 앵무는 놀랍게도 스스로 연습한다.
계속 연습한다고 상을 주지도 않고 연습 안한다고 벌을 주지도 않았는데, 발음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돌고래들이 아무런 상벌이 없어도 물 위로 뛰어 오르는 것을 많은 학자들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놀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앵무도 '그냥 재미있어서' 해 보는 것 같다.
'0'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매우 최근에 나타난 혁신적인 개념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앵무는 '0'도 이해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웃기고 신기한 언행(?)이 있었으니 바로 잘난척이다.
다른 어린 앵무가 발음을 잘못하자 "똑똑히 말해!"라고 반복해서 외쳤단다.
아이고 세상에.
그 외에도 서로 다른 물건들의 공통점이 색깔인지, 모양인지 등도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추상화 능력을 의미한다.

앵무새 알렉스 말고도 까마귀, 오랑우탄, 양, 여우원숭이, 개, 문어, 침팬지, 마모셋, 어치, 돌고래, 코끼리, 물고기의 지능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사람 만나는 자리에서 잡담할 때 솔깃한 이야깃거리로 활용할 수 있을듯하다.

일본애니메이션 '쵸비츠'를 연상시키는 귀털(?)의 소유자 마모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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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 칠 줄 알고 남을 등쳐먹기도 하는 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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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정신세계'를 가지고 '역지사지' 개념이 있는 오랑우탄. '현명한 할머니'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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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13:54 2008/03/25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