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2천년 전에 지구를 연구하기 위해 안드로메다에서 온 대학원생입니다.

Posted
Filed under 상상력 자극/Ficti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청중들을 돌아보려는 순간, 프로젝터의 푸르스름한 밝은 빛이 갑자기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한 탓에 말이 빨라졌다.

"우리의 지속적인 문명 발전을 위해서는, 급증하는 금속 철 수요를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금속 철 문제에 경제적이며 실현가능하며,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또 눈부심을 겪고싶지 않아서 잽싸게 프로젝터 빛의 범위로부터 벗어나 옆으로 물러섰다.

청중들은 이미 내 발표 내용의 골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은 없었다.

"축하하네. "
"열심히 하게."
"자네 연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네."

나이가 지긋한 청중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한 사람씩 격려의 말을 남기고 세미나실을 떠났다.
마지막 청중의 코트 자락이 복도로 사라지자 나는 겨우 경직된 미소를 거두고 차가운 벽에 이마를 붙였다.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승인 받을 것을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워낙 큰 연구비가 걸린, 높은 사람들이 들으러 오는 발표였기 때문에 많이 긴장했었다.
이제 제안서를 발표하고 승인까지 받았으니 이 연구의 성패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오늘 아침까지도 미생물 제련된 금속 철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제안서에 preliminary result로 금속 철의 검출 사진을 넣어서 심사위원들에게 더욱 확고한 인상을 주고싶은 욕심에 아침까지 난리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 좀더 여유를 두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고 기다리면 철이 나오겠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B. blacksmith라고 이름붙인 그 미생물이 시험관 환경에서 철을 제련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가방을 챙겨 세미나실을 나섰다.



연구실로 돌아와 인큐베이터를 열고 혹시나 하는 심정에 조금씩 배지를 떼어내 시험관으로 옮기고 원심분리 한 다음 상층액을 따라 버리고 새 버퍼로 희석시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약한 기대감과 함께 전자석에 전원을 넣고, 1시간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다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이번에도 금속 철은 없다.

"헴 철 밴드는 이렇게 뚜렷한데!"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인큐베이터를 쏘아보았지만, 쓴웃음만 나와서 그만두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2부로 이어집니다.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4/11 19:09 2008/04/11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