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은 기회에 영화 코어(The Core)를 보게 되었다.
2003년 4월 18일에 국내 개봉한 SF 액션 스릴러다. (라고 네이버는 말했다.)
내가 아마 포스터부터 봤더라면 이 영화 안 봤을지도 모른다.
개봉 시점도 아마게돈과 투마로우 중간이었다고 하는데, 아마게돈을 재미없게 봤으니 '이번에는 지하판 아마게돈이냐..' 하면서 백안시부터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코어는 포스터와는 달리(?)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재미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1. 문제상황 설정이 재미있다.
외핵 유동이 멈춰 지자기가 엉망이 된다.
지자기가 약해질 때 지상에 생기는 일들이 영화로 구현되는 것이 볼만하다.
2. 디테일
내가 대학원생이라 그런지,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과학자 행동학'이 두드러져 보인다.
작가나 감독이나 연출 중에 이공학계열 전공자가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일반관객이라면 예쁘고 잘나고 냉정한 '얼음공주' 벡에 가장 주목하겠지만,
나는 짐스키와 브래즈가 가장 볼만했다.
특히 짐스키라는 인물이 주목할만하다.
이 영화를 볼 때 생각하면 재미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1. 스토리
상황 설정은 좋다.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스토리는 기대하지 마라.
지구를 구하기 위해 여섯 명의 영웅이 땅속으로 떠난다.
하나씩 희생하고 죽고, 결국 주인공하고 주인공 여자친구(가 될 듯한 분위기도 슬쩍 흐르는)하고, 둘만 지구를 구하고 극적으로 살아돌아온다.
벌써 보기가 싫어진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을 보려면 진부한 스토리 쯤은 가볍게 무시해주자.
2. 과학적으로, 외핵까지 사람이 들어간다는게 가능한거야?
말할 것도 없이 현재는, 그리고 근미래에도 불가능하다.
영화설정은 이렇다.
지자기의 근원인 외핵의 회전 유동이 무슨 이유에선지 멈춰버린다.
완전소중한 지자기를 되살리기 위해 일단의 과학자와 군인들이 땅속 탐사선을 만들어 외핵까지 들어가서 핵폭탄을 터뜨려 유동을 되살리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지구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부분은 지자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현상들이다.
이 부분은 재미도 있고 과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지자기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다 죽었네요. 끝" 이렇게 영화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나리오를 이어가려면 주인공들이 땅속에 들어가야만 한다.
여기서부터는 과학기술적 억지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사실 SF 영화를 보면서는 이게 또 중요한 재미요소이기도 하다.
레이저와 초음파로 순식간에 앞길을 뚫는다든지 지구 내부의 고온고압에도 견디는 물질이라든지 하는 것 부터는 뻥이다.
이것도 잘 들여다보면 그럴싸하게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제 영화 속으로 고고싱 해보자.
사람들이 갑자기 픽픽 쓰러져 죽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지자기가 일시적, 국지적으로 난리부르스를 추자, 민감한 뇌(?)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빈혈걸린 양가집 규수처럼 쓰러져 죽는다.
사실 지자기는 그리 강하지 않다고 하고, 잘은 모르지만 MRI장비라든가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하는 기기 근처에서도 사람이 이렇게 쓰러져 죽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부분은 그냥 가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캡쳐된 아저씨는 영화 맨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인데 등장 몇초만에 죽는 신세가 되었다.
일단 이런식으로 눈을 붙잡아 놓는데 성공한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은 엄청난 비둘기떼로 유명하다.
지자기가 난리나자, 새들이 방향을 잃고 미쳐 날뛰며 인간이고 건물이고 할것 없이 오만 데 다 들이받는 바람에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
이래서 교통사고도 나고
건물 유리벽에 마구 부딪히기도 하는데....
잉? 넌 누구냐? 비둘기들 사이에서 왠 생선이 캡쳐되었다.
왜 생선이 캡쳐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캡쳐해보기 전에는 전부 비둘기가 부딪히는걸로 보인다.
새들이 미쳐 날뛰는 것은 아마도 철새들이 뇌에 나침반이 있어 지자기를 인식하여 방향을 찾는다는 가설에 근거하는 설정인 것 같다.
철새가 아닌 비둘기가 단거리 비행에서 뇌 나침반을 이용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새의 공간감각 인식 자체가 지자기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면 이럴 수도 있다.
네비게이션도 개판난다.
덕분에 바다에 착륙해야 하는 우주왕복선의 좌표 유도가 잘못되어, 로스앤젤레스 시가지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게 되는데....
원더우먼 여주인공이 기지와 능력을 발휘하여 로스앤젤레스 강에 착륙을 시도한다.
공사장 앞에서 겨우 멈췄다.
벙쪄서 우주선 앞코를 쳐다보고 있는 뒷모습의 아저씨는 용접한다고 시끄러워서 등뒤에 우주왕복선이 착륙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우주왕복선 추락 대량 살상사태"를 막은 얼음아가씨 벡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더욱 죽기좋은 땅속으로의 항해에 조종사로 발탁된다.
지자기가 약해진 하늘에서는 북극권, 남극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밤에 오로라를 구경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인 조쉬. 무슨 계시라도 받을 것 같은 분위기다.
사실은 그냥 "헐~" 이러고 있는 멍한 모습이다.
강의를 재미있게 해볼려고 애는 쓰지만 잘 안되는 지구과학과 교수 조쉬는 외핵의 유동이 멈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잘나가는 유명 과학자 짐스키에게 연락한다.
짐스키와 조쉬는 장군들 앞에서 문제가 뭔지 발표한다.
지자기가 없어지면 결국 태양풍으로부터 지표면이 보호받을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타죽어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 요지다.
말로 다 설명해놓고도 '멍청한 고위 군인 나으리'들을 위해 불쑈도 보여준다.
"지구가 이렇게 됩니다."
이분이 짐스키 아저씨.
외핵 유동의 뉴메리컬 모델링을 주요 연구 분야로 하고 있는 짐스키씨는 외핵에 엄청난 폭발 충격을 주면 유동을 되살릴수도 있음을 알아낸다.
그러려면 외핵에 들어가는 장비가 필요하다.
짐스키의 오랜 웬수인 브래즈가 이런 '미친' 프로젝트를 사막에서 하고 있는데,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잘난척쟁이에 머리를 뒤로 빗어넘기고 땅속에 들어갈때조차 명품가방을 들고가는 '밥맛' 짐스키와는 대조적으로, 정치력이 부족한 '미친 천재 공학자' 브래즈는 꾀죄죄한 용모에 정신없는 화법을 구사한다.
3개월만에 완성하려면 얼마면 되냐는 고위 군인의 질문에 "15억 달러!"라고 말하며 자조섞인 폭소를 터뜨리는 브래즈씨.
연구비 따낼려고 발표할때마다 받은 잇따른 미친놈 취급으로 살짝 맛이 가시고 돈에 쪼들려온 인생의 굴곡(?)이 드러나는 표정이다.
"수표로 줄까?" "카드가 낫지 않을까요?"
이 와중에도 카드 마일리지를 챙기는 알뜰한 조쉬씨.
뒤에서 짐스키가 "천박한 것들..."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진짜 주는거야?" 벙쪄버린 브래즈.
이렇게 해서 지중 탐사선이 만들어진다.
외핵에 들어가는 탐사선을 만들 기술은 이미 다 확보되어 있으나 돈이 너무 들어서 못 만들고 있었을 뿐이라는 설정인데, 너무 신경쓰지 말기로 하자.
폭발력을 제공할 핵탄두는 국제협력을 통해 구해왔다는데 이 부분도 그냥 대충 넘기고 싶은 분위기이므로 깊이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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