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2천년 전에 지구를 연구하기 위해 안드로메다에서 온 대학원생입니다.

Posted
Filed under 상상력 자극/Fiction
B. blacksmith는 새로운 기능성 미생물 발견 업적을 많이 쌓은 현장 생물학자 블랙스미스 박사가 채집한 미생물이다.

폴리머로 이룩해 온 우리 문명 세계에 있어서 신소재인 철 금속의 발견은 새로운 문명 시대를 열어 주는 장밋빛 약속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 환경에서는 철 원자 자체가 매우 희귀했다.

전 우주를 통틀어서도 철 원자는 귀하다.
항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이 몇번이고 반복되어 흔한 수소 원자가 철 원자가 되려면 희박한 확률의 행운과 긴 시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재 소비되고 있는 금속철은 대부분 핵융합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만 단가가 너무 비싸서 대량생산에는 부적합한 방식인 것으로 드러났다.


위대한 물리학자 웨페트 박사는 철 금속이 고체와 플라즈마 상태 외에도 액체라는 중간적인 상태를 가질 수도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고, 그의 제자인 타쉬 박사가 극히 정밀한 실험기기를 통해 철의 액체 상태를 실험실에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순수 금속철보다는 값싼 산화철 분말을 비슷한 조건으로 가열하면 때에 따라서 소량의 액체 금속철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밝혀져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는데, 웨페트와 타쉬 박사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빠른 '최고 과학자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액체 상태가 나타나는 조건의 범위가 너무 좁아서 실험의 재현성이 형편없다는 것이 드러나 두 박사는 윤리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로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순도 높은 금속철을 제련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내가 시도하고 있는 방식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새롭고 놀라운 방법인 미생물 제련법이다.

블랙스미스 박사는 우연히 한 나선은하의 차가운 구석에서 금속철 집적도가 매우 높은 작은 행성을 발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사는 이 행성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금속철 부분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어째서 이렇게 높은 집적도의 달성이 가능했는지가 궁금해져 행성의 표면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았다.

놀랍게도 행성 표면에는 고순도 금속철을 껍데기(Shell)삼아 두르고 다니는 미생물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미생물들이 알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스스로 금속 철을 생산하여 철 껍데기를 만드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3부로 이어집니다.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4/11 19:29 2008/04/11 19:29
Posted
Filed under 상상력 자극/Ficti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청중들을 돌아보려는 순간, 프로젝터의 푸르스름한 밝은 빛이 갑자기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한 탓에 말이 빨라졌다.

"우리의 지속적인 문명 발전을 위해서는, 급증하는 금속 철 수요를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금속 철 문제에 경제적이며 실현가능하며, 환경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또 눈부심을 겪고싶지 않아서 잽싸게 프로젝터 빛의 범위로부터 벗어나 옆으로 물러섰다.

청중들은 이미 내 발표 내용의 골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은 없었다.

"축하하네. "
"열심히 하게."
"자네 연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네."

나이가 지긋한 청중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한 사람씩 격려의 말을 남기고 세미나실을 떠났다.
마지막 청중의 코트 자락이 복도로 사라지자 나는 겨우 경직된 미소를 거두고 차가운 벽에 이마를 붙였다.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승인 받을 것을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워낙 큰 연구비가 걸린, 높은 사람들이 들으러 오는 발표였기 때문에 많이 긴장했었다.
이제 제안서를 발표하고 승인까지 받았으니 이 연구의 성패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오늘 아침까지도 미생물 제련된 금속 철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제안서에 preliminary result로 금속 철의 검출 사진을 넣어서 심사위원들에게 더욱 확고한 인상을 주고싶은 욕심에 아침까지 난리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 좀더 여유를 두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고 기다리면 철이 나오겠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B. blacksmith라고 이름붙인 그 미생물이 시험관 환경에서 철을 제련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가방을 챙겨 세미나실을 나섰다.



연구실로 돌아와 인큐베이터를 열고 혹시나 하는 심정에 조금씩 배지를 떼어내 시험관으로 옮기고 원심분리 한 다음 상층액을 따라 버리고 새 버퍼로 희석시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약한 기대감과 함께 전자석에 전원을 넣고, 1시간 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다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이번에도 금속 철은 없다.

"헴 철 밴드는 이렇게 뚜렷한데!"

나는 탄식을 내뱉으며 인큐베이터를 쏘아보았지만, 쓴웃음만 나와서 그만두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2부로 이어집니다.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4/11 19:09 2008/04/11 19:09